페트라 역사 완전정리 (유적지, 건축양식, 문화유산)
요르단 남부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고대 도시 페트라(Petra)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적입니다. 고대 나바테아인(Nabataeans)의 수도로 건설된 이 도시는 붉은 사암 절벽을 조각하듯 만든 건축물로 세계인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페트라의 역사적 배경, 독특한 건축양식,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나바테아인의 역사와 페트라 유적지의 탄생
페트라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아라비아 유목 민족인 나바테아인이 세운 도시입니다. 당시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지중해로 이어지는 향신료와 무역로를 장악한 상인 집단으로, 이익을 바탕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구축했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은 무역로 중심지였던 페트라를 그들의 수도로 삼고, 수백 년에 걸쳐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거대한 도시를 완성시켰습니다. 이 도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동쪽의 아라비아, 서쪽의 이집트, 북쪽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사막을 통과하는 대상(무역 행렬)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페트라는 천연 요새처럼 험준한 협곡 안에 지어졌기 때문에 방어에 유리했으며, 물이 부족한 사막 환경에서도 놀라운 수로 시스템과 저장고 기술로 도시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기술력 덕분에 나바테아인들은 로마 제국과도 대등하게 교류하며 긴 시간 동안 독립을 유지했으나, 결국 서기 106년 로마에 합병되면서 나바테아 왕국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고대 건축양식의 집대성: 페트라의 미학
페트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양식입니다. 붉은 사암 절벽을 깎아 만든 도시 구조는 마치 자연 일부처럼 보이며, 이는 다른 고대 유적지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미감을 자랑합니다. 전체 도시에는 수백 개 이상의 건축물, 왕릉, 신전, 수도원, 극장 등이 존재하며, 이들 대부분이 절벽에 새겨진 형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알 카즈네(Al-Khazneh)로, 이른바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페트라 입구인 시크(Siq) 협곡을 따라 들어간 끝에서 처음 마주치는 거대한 파사드로, 높이가 약 40미터에 달합니다. 또 다른 유명한 건축물인 아드 데이르(Ad-Deir)는 ‘수도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은 종교 의식에 사용된 건물로 추정됩니다. 산 정상에 자리해 있어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으며,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알 카즈네보다 더 감동적’이라 평가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존 노력
1985년,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역사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을 “사막 속에서 꽃핀 고대 도시의 뛰어난 예술성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평가했으며, 이후 보존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놀라운 유산에도 불구하고, 페트라는 여러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관광객 증가에 따른 마모입니다.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유적을 밟고 지나가면서 바위의 침식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와 풍화 작용도 유적 보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요르단 정부와 국제기구는 다양한 보존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유적지에 대한 디지털 스캔 및 3D 복원 작업, 지질학적 안정성 조사, 관람객 동선 제한 등의 노력이 병행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의 지혜와 문명이 집약된 고대 도시이자, 건축 예술과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장엄한 모습으로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이 도시는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